요하현 령남조선족촌에 '동북항일련군 제7군 진렬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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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하현 령남조선족촌에 '동북항일련군 제7군 진렬관' 개관
//hljxinwen.dbw.cn  2018-09-28 14:36:37

  (흑룡강신문=하얼빈) 9.18사변 87주년을 맞아 최근 중공 요하현위와 현정부 및 요하진정부의 대폭적인 지지하에 2년간의 준비와 건설을 거쳐 동북항일련군 제7군 탄생지인 요하현 요하진 령남조선족촌에 애국주의 교육기지인 '동북항일련군 제7군 진렬관'을 정식 개관했다. 전관은 도합 6개부분으로 나누어 사진과 글을 결합하고 부분적 항일련군 문물을 전시해 당년 동북항일련군 7군과 주변 각족 인민들이 곤난과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본침략자와 맞서 싸운 정경을 재현시켰다. 이날 행사에는 요하현, 요하진의 령도들 및 령남조선족촌 촌민 500여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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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념관을 령남촌에 세운 것은 당시 당조직의 건립과 항일무장력량의 발전과 밀접하게 련관되여 있다. 동북항일련군 력사기재에 따르면 1929년 말 최석척(최용건), 황철운(황계흥), 최일산, 서봉산(리양춘) 등 당원(모두 조선족임)이 보청, 호림, 요하지역에 와서 군중들에게 당의 주장을 선전하고 당원을 발전시켰으며 군중들을 조직해 혁명활동을 전개하였다. 1930년 3월 중공 요하현위가 설립, 최일산이 서기를 맡고 최석천, 황철운, 서봉산이 위원을 맡았으며 현위기관은 요하현에 주둔했다. 1931년 3월, 북만특위의 지시에 근거해 중공 요하현위의 기초에서 중공 요하 중심현위를 건립, 서기에 박원빈, 위원에 최석천, 리일평, 박진우, 리학복 등 7명의 조선족이 담임해 요하, 무원, 호림, 보청 4개 구위를 령도했으며 당원이 140명에 달했다.

  당조직의 령도하에 요하의 반일조직은 신속히 확대되였으며 요하반일회, 요하반일총회, 요하반일유격대, 요하농공의용군, 동북국민구국군 제1려 특무영, 요하민중반일유격대대로 발전,대대장에 리학복, 참모장에 최석천, 정치원에 박진우가 담임했으며 후날 동북 항일련군 제7군으로 발전했다.

  1933년 여름, 요하중심현위는 요하농공의용군대오를 확대하기 위해 항일골간력량을 양성,반일회활동기초가 비교적 좋은 삼의툰(령남촌)에 군정훈련반을 열었다. 훈련반 주임에 최석천, 대대장에 김문형, 반장에 리학복, 교원에 박진우, 김탁, 양관진이 담임했으며 70여명 학원은 모두 20대의 조선족청년들이였다. 1935년 9월18일, 요하민중반일유격대대는 정식으로 동북항일련군 제4군 제4퇀으로 개편, 퇀장 리학복, 부퇀장 박진우, 참모장 최석천, 정치부주임 리두문이였다. 1936년 4월, 상급정신에 근거해 동북항일련군 제4군 제2사로 개편, 정로암이 사장, 리학복이 부사장, 최석천이 참모장, 최영화가 정치부주임겸 당위서기를 맡았다. 1936년 11월15일, 동북항일련군 제7군으로 개편, 도합 700여명으로 산하에 3개사, 14개 퇀으로 구성되였다. 군장에 진영구, 참모장에 최석천, 제1사 사장 진영구 겸임, 제2사 사장 리학복,제3사 사장 경락정이 담임했다. 1937년 3월6일 진영구군장이 전투에서 희생, 최석천이 당위서기, 리학복이 군장을 담임했으며 리학복군장이 병치료를 하는 기간 최석천이 참모장 겸 대리군장을 담임했다.

  동북항일련군 제7군은 당의 령도하에 광범한 군중에 의거해 동북변강의 유리한 자연지리조건을 리용하고 천고만난을 극복하며 장장 11년의 항일유격투쟁을 견지하면서 항일투쟁의 최종승리를 위해 유리한 조건을 창조했다. 비할바 없이 어려운 항일투쟁가운데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항일장령들인 진영구, 리학복, 장문개, 왕여기 등이 선후로 귀중한 생명을 바쳤으며 무수한 항일전사와 애국군중들이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쳤다.

  이번 진렬관의 설립에 기여한 박영학 (집현현 전임 정협주석)씨는 '동북항일련군 제7군 진렬관'의 설립으로 동북항일련군의 14년간 항일투쟁사를 재조명하게 되였으며 조선족 항일장령들의 력사를 널리 알리고 향후 요하현과 령남촌의 홍색관광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