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발해,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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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 북부지역 부분적 고구려유민들 복국의 노력)
 
고구려(고려) 멸망후 부분적 고구려(고려)유민들과 말갈인들이 고구려(고려)회복의 의지에서 연변과 목단강지역을 중심으로 건립한 나라. 건국시조는 대조영, 중국 구당서에는 "속말 대조영은 고려별종이다"고 서술. 무왕 대무예가 영토를 확장. 선왕 대인수(재위 818~830) 때 영토와 사회적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림. 

 
발해는 통치집단은 고구려(고려)인 위주, 백성은 말갈인이 많은 국가 - 발해를 방문한적이 있는 일본의 사서에 "백성은 말갈이 많고 고려인이 적었다. 모두 고려인을 부락장으로 하였다"고 당시 상황을 기록. 
 
발해 망국후 유민은 3갈래로 나뉘여짐, 왕건의 고려국으로 간 사람들, 거란에 끌려간 사람들,  원지역에 남은 사람들. 원지역의 말갈인들은 후에 여진(女眞)으로 불리움. 
 
주요 사건 년대 :

- 기원 698년 료서에 끌려갔던 고구려(고려)유민들과 말갈인들 반란하여 동으로 이동, 대조영이 천문령전투에서 당군 격파, 동모산에서 “진국”을 건립. 
- 기원 713년 대조영이 당으로부터 발해군왕의 칭호를 받음. 이후 발해로 일컬어짐.

- 기원 727년 녕원장군 高仁義를 대표로 한 24명 사절단 일본 파견. 국서에서  <<고려의 옛땅을 되찾고 부여의 유속을 가지고 있다>>고 소개.
- 기원 732년 무왕, 장문휴를 보내 당의 등주(登州)공격,
- 기원 9세기 접어들면서 발해는 '해동성국'의 전성기를 누림

- 926년 거란의 공격으로 멸망. 발해 유민 부분적으로 거란에 끌려감.
-  부분적인 발해 유민들의 남하 고려와 합류. 928년 金神의 60호로부터 시작하여, 934년 발해국 태자  大光顯의 이끈 유민 수만명이 고려로, 朴升이 이끈 유민 3천여호가 고려로 , 979년 수만명이 고려로 유입 등 이민사건이 사서에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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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고구려의 꿈에서 막을 열었다가,  고구려 꿈에서 막을 내린 나라)
 
고려 건국시조는 왕건(王建: 재위~943). 고구려 회복의 의지에서 국호를 고려 서울은 송악(조선 개성시).
 
주요사건 년대 :
 
- 기원 892년 견훤이 후백제를 건립.
- 기원 901년 궁예가 송악(개성)에 도읍을 정하고 후고구려(후에 태봉국으로 변경).
- 기원 918년 정변으로 궁예가 죽고 왕건 즉위 국호를 고려라 정함.
- 기원 935년 신라 경순왕 고려에 항복
- 기원 936년 후백제를 대파, 후 삼국 통일.
- 기원 958년 고려 과거제도 실시
 
- 기원 993~1018년 거란의 3차 친입과 전쟁.
- 기원 1018년 강감찬장군 귀주대첩, 거란의 10만 대군을 거의 전멸시킴.
 
- 기원 1218년 고려에 칩입한 거란군을 몽고와 함께 격퇴.
- 기원 1231~1257년 몽고의 7차 친입과 전쟁. 28년을 걸친 전쟁은 고려의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막대한 인명·재산·문화재의 피해를 줌. 최종 고려가 굴복, 부마국이 되고 공물과 여자를 바치기로 함.
 
- 기원 1359년  홍건적(원나라말엽 홍건군)의 1차 침입, 4만명 홍건적 대부분 소멸.
- 기원 1360년 홍건적의 2차례 침입. 20만명 홍건적 10만명이 사살되여 퇴각. 홍건적은 몰아냈으나 고려도 막대한 피해를 받음.
 
- 기원 1370년(원말) 공민왕이 이성계를 보내 료동에 있는 동녕부(료양)를 공격 점령하였다가 물러남.
- 기원 1388년(명초)  고구려령토 회복을 위한 료동정벌 재차 출발, 그러나 이성계가 료동정벌군을 회군하여 정변. 정권찬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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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3040 박대호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