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동북조선인 민족해방운동사 (1910년~20년)

0 2,947
 
배경 :
 
중국 - 1911년 중화민국이 청나라를 교체, 동북에서는 친일파 군벌통치중.
조선(한)반도 - 1910년부터 조선(한)인들은 일본의 망국노가 됨. 1919년 3월1일 서울독립만세시위 일어남. 조선각지에 파급. 일제의 잔혹한 탄압이 있었음.  
 
 
1.반일지사들의 학교설립

동북으로 이주한 반일지사들은 즉각적인 항일투쟁보다 먼저 학교를 설립하여 후세에 대한 애국심을 불러일으키는것이 급선무라고 생각. 1910년대 설립된 학교수가 연변에만 72개 1926년에서 191개소.

2.1919년 3월13일 독립만세 시위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호응하여 재중국조선인들의 반일독립시위가 벌어짐.
 
3월.13일 반일단체지도자들의 조직하에 룡정에서 2만여명 군중집회. “독립선언서”를 읽고 “조선독립만세” 구호 웨침. 시위대오가 일본영사관앞에서 란폭한 사격을 당해 당장에서 14명이 숨지고 삽시에 피바다로 됨.
 
룡정에서 일어나 3.13반일군중시위와 같은 반일독립시위는 연변각지는 물론 류하,집안,흥경, 조선인집거구들에서도 맹렬히 일어남.

3."3.13운동"후 조선인무장대오 건립과 투쟁

반일독립지사들은 3.13 피의 교훈에서 오직 무장투쟁많이 일본 침략을 물리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 인식. 1919년 4월부터 중국 동북 각지에서 조선인 반일단체들이 무기 구입 무장대오 건립하기 시작.
 
이시기 건립된 무장대오들로는 간도국민회, 대한군정서, 서로군정서, 군무도독부, 북로군정서, 독립경비단, 대한독립군, 의군단, 청년단, 광복군총영 등이 있음.
 
이러한 무장대오들은 변경지구 및 조선에 건너가 부단히 일본군경들을 습격. 1921년 한해동안만 일군과 교전 602차, 참전자 3184명에 달함.

4.<<경신년대토벌>>과 청산리전투

1920년6월 홍범도장군이 지휘한 조선인반일무장대오가 봉오동에서 일군 150여명 일거에 소멸.
 
봉오동참패후 일본은 동북 조선인반일무장에 대한 소위 대토벌을 계획. 그해 10월 2만여명의 병력을 동원 <<경신년대토벌>> 시작.

조선인반일무장대오들은 연길현에 모여 연합작전방안 연구. 김좌진,홍범도를 위수로, 6일간 지속된 청산리전투를 펼쳐 일본군 1,000여명을 소멸 수많은 무기와 군수물자 로획. 중외를 진감. 얼마후 조선인반일무장대오들은 러시아 연해주로 옮김.

<<대토벌>>시기 일본군들이 이르는 곳마다 살인, 방화, 약탈, 강간을 감행. 수많은 조선인마을을 재더미로 만들고 수천명의 무고한 조선인들을 학살하는 하늘에 사무치는 죄행을 저지름. 
 

korean3040 박대호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