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동북조선인 민족해방운동사 (1920년~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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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 
 
중국:  1927년 남경 국민당정권 건립, 1924년-1936 중국 장기적인 내전상태;  1931년 일본이 9.18사변 일으켜 동북침략, 1932년3월1일 동북에 괴뢰僞滿州國 건립. 1937년 일본이 7.7사변 일으켜 전면적인 중국침략 시작.  
조선 (한)반도 :  일본식민통치중
 

1. 동북 공산주의단체의 건립과 반일투쟁, 관내 공산주의자들 민족해방운동에 투신.
 
1923년 녕고탑에서 “적기단” . 1924년반석에서 “韓族로동당”이 건립. 1926년5월  조선공산당 해외만주총국이 녕고탑에 건립,
이런 정치단체들은 각기 자기 단체에 속하는 청년단체, 로동조합, 농민조합, 호조회, 부녀회 등을 조직하여 반일투쟁을 전개.
 
관내 황포군관학교를 줌심으로 중국군사학교에서 학습하던 많은 진보적조선인청년들도 국제주의를 지향하는 중국공산당을 따라 민족해방운동에 투신, 중국국내혁명, 광주봉기, 남창봉기, 2만5천리 장정에 참가. 대표적 인물로는 양림, 무정. 공산당 지하공작에 참가한 대표인물로는 중공천진시위서기 이철부 등.
 
 
2. 동북조선인 민족주의자들의 통합, 조선혁명군과 한국독립군의 투쟁
 
1928년 길림성 화전현에서 정의부 외 18 개의 독립 운동 단체 대표 39 명이 모여 민족 일당 통합을  협의. 결과 남만주에서는 조선혁명당으로 통합발전, 북만주에서는 한국독립당으로  통합발전.
 
조선혁명군(총사령 양세봉)과 한국독립군(총사령 리청천)은 1929~1933년사이 활약적인 전투를 함. 대표적것으로는 1932년 조선혁명군과 중국의용군 함께했다고 전하는 영릉가 대승첩; 1933년 대한독립군이 길림구국군과 합께한  대전자령대첩 등이 있음.
 
1937년8월 조선혁명당한국독립당은 대한민국림시정부 김구가 이끄는 한국국민당 등 7개 단체와 함께 남경에서 "한국광복운동단체연합회"를 결성, 대한민국림시정부와 합류.
 
* 대한민국림시정부는 1919년4월 상해에서 수립, 관내 조선인들 독립투쟁의 중요한 구심점. 대표적 영도자로는 김구, 이승만 등, 1932년 윤봉길 의사가 상해에서 일본군 장교들을 폭사시킨후, 중국국민당정권의 지원을 받기 시작. 1940년 9월 한국광복군(리청천 총사령) 개편창설,1945년 병력수는 339명. 대한민국임시정부는 군사적인 투쟁보다 조선(한)반도의 광복을 위한 국제외교에 중요한 역할을 함. 임시정부의 활동은 1943년 2차대전 동맹국 "카이로선언"에서 일본패망후 조선독립을 약속하는데 중요 밑거름이 됨.
 
 
3. 재중국 조선인공산주의자들 중국공산당에 가입, 동북항일련군의 건립과 투쟁
 
1929년에 공산국제에서 “일국일당”원칙에 따라 중국경내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중국공산당의 통일령도를 받으며 중국혁명에 참여할것을 요구(주요원인은 재중국 조선공산주의자들의 파벌투쟁 - 화요파·상해파·ML파·서울파 각 파별로 독자적인 조선공산당만주총국을 운영). 1930년 봄부터 조선공산주의자들은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농민협회, 반제동맹, 반일청년회, 부녀회 군중조직 재 정돈.
 
1931년부터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항일유격대들이 건립되기 시작. 초기에 대부분 조선인으로 구성. 유격대들은 중쏘변경 등 산악지구에 수많은 유격근거지 건립, 인민정부도 수립. 1934년11월부터 동북인민혁명군으로 개편되기 시작 . 동만유격근거지에서는 1932년 봄부터 1935년까지 일제의 세 차례의 대규모적인 군사<토벌>을 맞선 치열한 반<토벌>전투가 진행됨.
 
조선인공산주의자들이 중국공산당에 가입후, 조선인들을 주요대상으로 한 중국공산당의 착오적인 ”반민생단투쟁”이 있어 조선인들에게 큰 상처가 되기도 함. 1936년공산국제의 긴급지시로 중단 되기까지 4년사이에 조선인 혁명가 430명이 내부적으로 처형당함.
 
1936년부터 중국공산당의 지도하에  동북각지에 반일부대들이 연합, 동북항일련군으로 개편. 동북항일련군은 전성기 11군, 3만여명. 약 반은 조선인.
 
동북항일련군은 광활한 만주밀림에서 간고한 유격전쟁을 전개. 1936년부터 1937년사이 일본군과 교전차수가 3970여차.   제7군군장 리복학, 제3로군총참모장 허형식, 제1군참모장 리홍광을 비롯한 수많은 우수한 조선인 아들딸들이 보귀한 생명을 바침.
 
일본군의 끊임없는 대토벌에 근거지가 파괴, 병력이 천여명으로 감소, 1940년 겨울부터 쏘련경내로 이동.
 

4.관내 조선의용군의 건립과 화북에서 항일투쟁
 
1938년 중국국민당정부의 지원하에 설립되였던 조선의용대의 대부분이 1941년 무한에서 화북으로 전의, 태항산항일근거지의 화북조선청련련합회와 련합, 1942년7월 조선의용군으로 확대 발전. 무정을 사령원으로 추대. 중국공산당의 통일령도하에 팔로군과 함께 화북에서 항일투쟁.
 

korean3040 박대호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