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동북조선인 민족해방운동사 (1945년 광복후)

0 3,617
 
배경 :
 
중국 : 동북은  1945년8월 해방되였으나 1945년 11월 ~ 1948년11월(료심전역)까지 중국공산당과 중국국민당 내전중. 1949년10월1일 북경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을 선포.
조선(한)반도 : 광복은 되였으나 남북이 합의를 보지 못하고 1948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으로 각각 건국. 1950년6월25일 무력통일을 시도한 조선(한국)전쟁이 일어남 .
 
 
1. 일제패망후 조선건국을 위하여
 
조선(한국)의 독립은 조선인들의 종국적인 목표중 하나. 
 
1945년 815일 일제투항후 쏘련에 전이했던 원 동북항일련군 부분 조선인장병들이 쏘련군과 함께 직접 조선에 귀국, 김일성을 위수로 조선(북)건국의 주축세력이 됨.

1945 12조선의용군 사령원 무정이 소수의 인원과 함께 조선(북)에 귀국, 조선(한국)전쟁전야,  중국해방전쟁에 참여했던 조선인관병 37천여명 선후로 조선(북)에 귀국, 조선인민군의 중요 구성으로 됨.
 
동북조선인 230만중 100만이 조선(한)반도로 귀국, 새로운 나라건설에 참여
 

2. 동북에서 조선인인민무장대오의 건립,확군, 중국인민해방전쟁에 참여 

1945년 8월15일 일제투항후 쏘련에 전이했던 동북항일련군이 동북으로 돌아옴, 조선인인민무장건립 착수. 연변에 돌아온 강신태가 조선인무장 경비퇀을 조직, 6개퇀 1,100여명으로 확충.
 
심양에 심양조선의용군독립지대, 할빈에 조선독립대대, 밀산 목단강지역에서도 인민자위군 등이 건립, 
 
조선인인민무장수립에서 조선의용군(1,3,5,7지대로 구성)이 가장 큰 역할을 함.  1945년 11월 조선의용군이 조선에 진출하려  했으나 쏘련군의 저애로 무산, 동북에서 확군 시작. 조선의용군 1지대는 남만에서, 3지대는 북만에서, 제7지대는 길림화전지역에서, 제5지대는 연변에서 확군. 
 
형세의 수요로 조선인부대들은 중국해방전쟁에 참가,  중국인민해방군 제4야전군 주력부대들로 개편, 해방전쟁시기 동북3성에서 조선인청년들이 참군한 수는 도합 6만4천명(당시110만 조선족의 6%), 초기 동북전장에서서 피동이였던 중국공산당에게 있어서 조선인부대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했음. 
 
중국해방전쟁중  <<三下江南>> , <<四保臨江>> 의 초기전역과 그 뒤 <<사평보위전>>, 길림과 장춘해방전역, 료심전역, 평진전역에 참가, 장강을 넘어 전국을 해방할때 광서, 해남도까지 나감. 수많은 조선인 전투영웅들이 피를 흘림.
 
 
3. 조선(한국)의 독립과 중화인민공화국 건립에 거대한 공헌

항일전쟁부터 항미원조까지의 조선족혁명렬사수는 조선족수의 1/28; 길림성 녀성렬사중 95%가 조선인녀성. 중국인민해방전쟁시기 희생된 조선인관병 4600여명. 산마다 렬사비를 남김.
 

4. 중화민족대가정 성원으로 
 
중국해방전쟁시기 동북조선인들은 중국공산당의 령도하에 토지개혁을 통해 땅의 주인이 되기 시작, 동북조선인의 대부분이 중국국적을 선택할때 소부분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국민신분으로 중국에서 생활하는 방식을 선택. 
 
1952년9월3일 주덕해를 수반으로 한 연변조선족자치구(후에 주로 개칭) 창립. 주덕해 등의 노력으로 1958년9월15일 장백조선족자치현이 창립. 동북에 선후로 42개향이 조선족향(련합향을 포함)으로 개편. 중화민족의 일원이 된 조선족, 다민족사회주의국가건설에 힘을 함께 하기 시작.
 

korean3040 박대호 정리